20세기는 세계화(世界化, Globalization)의 시대였다.
세계화란 인류 문명이 단일한 체계로 수렴하는 현상으로 국가 간의 경계가 약화되고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이 통합되는 것을 말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 질서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때 군사적 라이벌로 소련이, 경제적 라이벌로 일본이 부상하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으나,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 일본이 몰락하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일극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바탕 위에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인 FTA가 발효되면서 전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상호 의존성이 더욱 심화되는 초세계화(超世界化, Hyper Globalization)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세계화의 피로도는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유무역과 국제 아웃소싱(Outsourcing)은 결과적으로 미국 내에 대규모 무역적자와 중산층 붕괴, 빈부격차 심화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 중심의 경제 블록화와 트럼프-바이든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미·중 무역 갈등,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20세기 세계화의 상징이었던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을 깨뜨리면서 세계 경제 블록화를 심화시켰다.
설상가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패권 전쟁은 다극체제(Multipolarity)와 함께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2023년 올해는 본격적인 탈세계화 시대의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는 2024년 2월 13일 WTO 제13차 각료회의에서는 탈세계화와 함께 지역 중심의 세계화(Glocalization)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지난 20년은 세계화로 인한 사상 유례가 없는 호황기였다. 그 이유는 중국이 세계 공장과 소비시장 역할을 하면서 성장을 이끌고 인플레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 분쟁은 공장과 시장을 동시에 잃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성장을 이끌고 인플레를 막아온 수단을 잃게 했으며, 세계 경제 블록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탈세계화 흐름은 전 세계적인 동반 성장 둔화(Synchronized Slowdown)로 이어질 전망인데, 문제는 지금까지 세계화의 수혜를 입으며 성장해온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에 너무도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과 인구감소, 초고령화 사회, 가계부채, 성장잠재력 둔화 등 악재랑 악재는 모두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거기다 탈세계화와 세계 경제 블록화는 한국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크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국은 미·중 무역 분쟁에 거리를 두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블록이든 중국이 주도하는 블록이든 들어가서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최대한 글로벌 교역망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한국은 일본처럼 내수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호주처럼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전 세계 글로벌 교역망에 남아있어야 하며, 그래서 일본이나 호주와 달리 다자적 외교와 통상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렇게 보았을 때 현재 한국 경제 위기는 일차적으로 미숙한 현 정부의 경제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실리외교보다 가치외교를 추구하며 미국 일본이 주도하는 경제 블록에 함부로 올인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화 시대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였다면 오늘날 탈세계화 시대는 EU, 중국, 미국, 일본, 중동 등 다극체제가 그 특징이다. 오늘날은 신냉전 시대가 아니다. 군사적으로는 양극화 되어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다극화 되어 있으며, 탈세계화, 지역화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국가간 상호의존이 더욱 증가하는 매우 복잡한 시대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탈세계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화 질서를 구축하는 중이다. 그것이 “재세계화(Reglobalization)”로 이어질지, 아니면 “더 나은 세계화”로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을 신냉전 시대로 인식하면서 과거 냉전시대 양극체제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실리보다 가치를 추구하는 순진한 외교 정책을 펼치다 보면 실익은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강대국들에게 이용만 당할 위험이 크다.
여러모로 2024년은 격동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역사의 대격변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책임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