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난 역사를 재조명하는 영화가 다수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들은 지난날 독재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어떻게 권력을 함부로 사용했는지를 고발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312만 명이 관람했고, 이에 앞서 2017년에 개봉된 ‘택시 운전사‘는 1,218만 명이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늦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은 이 땅에 처박혀 있던 진실을 되찾아 생생하게 보여 준 것이다. 영화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당시 불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군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작된 각본에 따라 남파된 북한군이 개입하여 일어난 빨갱이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군대를 보내 유혈 진압했다. 국민 대다수는 정권에 의해 장악된 언론 보도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외의 주장은 유언비어로 간주하여 군사재판에 부쳐질 악으로 간주하였었다. 그러자 한국교회는 진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여기저기서 ‘구국 기도회’를 열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며 북의 음험한 침략적 행위를 규탄했다.
한 도시가 초토화된 그 참혹한 비극을 한국교회가 정말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이 일어난 직후인 1980년 5월 30일 종로 5가 기독교 방송국 6층에서 신군부에 의한 광주시민이 겪은 참극을 세상에 알리고 항의하기 위하여 몸을 던져 투신한 대학생이 있었다. 김의기 열사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그의 희생적 죽음을 외면했고, 진실을 용기 있게 직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독재자를 위해 국가조찬기도회를 열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했다.
한국 기독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지나오면서 반공 수구적 종교로 터를 잡았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민주화를 주장하거나 북한과의 평화를 주장하는 이를 친북 용공 분자로 몰았다, 북한은 악, 남한은 선이라는 이원론적 도식에 빠져 남쪽의 독재자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빌고, 북한 집단이 멸망하기를 요나처럼 빌었다. 이렇게 70여 년 지난한 역사를 지나면서 한국교회의 체질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아니라, 반공수구 집단으로 체질화된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는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은 메말라 갔다.
예언자적 소명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는 반공 프레임이 채워졌다.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은 그때부터 빨갱이, 좌파, 용공 분자를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사역으로 변질되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 교회가 독재 치하에서도 마음껏 자유를 누린 영역은 바로 반공 프레임을 사용하여 북을 저주하고 증오하는 것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은 교회를 돌며 상대 당을 용공, 친북, 좌파, 빨갱이로 몰았다. 그러면 반공 프레임이 작동된 신자 다수는 빨갱이를 피해 독재자 편을 들었다.
그러니 선거할 때만 되면 “누가 민주주의자이고, 누가 좋은 정치를 할 사람인가“라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아니라, 번번이 빨갱인가 아닌가가 판단 범주가 되곤 했다. 이 프레임에 걸리면 민주화 운동가도, 평화 운동가도, 독재를 반대하는 이도 모두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아무도 그들이 정말 빨갱이인지 확인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는 자신도 빨갱이로 몰릴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 교회는 광주의 비극을 외면했고, 무고한 이를 잡는 빨갱이 몰이꾼이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된 자신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가 감추고 외면한 것에 대하여 영화라는 ‘돌들이 소리’를 지르고, 1300만이 넘는 이들이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