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복음]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 정체성이 확인되는 순간 인간이 된다
[영화와 복음]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 정체성이 확인되는 순간 인간이 된다
  • 임명진 목사
  • 승인 2024.03.21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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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신기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동화 『피노키오』는 여러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다. 그 가운데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원작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을 바탕으로, 예쁘고 아기자기한 여타 영화와는 다른 스톱모션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꼭두각시 같은 나무 인형이 살아 움직이며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도 독특하거니와, 기괴함과 과장된 기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기예르모 델 토로 특유의 기발함이 결합되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아동 대상의 동화나 애니메이션은 권선징악이나 고진감래의 주제에, 해피엔딩의 결말을 유지하기 마련인데, 여기엔 민감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담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다르다. 여러 사회적 메시지를 주장한다. 일단 원작의 배경은 1,800년대 이탈리아지만, 영화에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극에 달한 2차 세계대전으로 설정되어 있다. 전쟁의 참상과 아픔이 영화 기저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의 첫 시작도 그로 인한 비극적 상황 묘사이다. 아들 카를로와 단란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목수 제페토가 성당의 예수상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낙하된 포탄으로 아들을 잃는다. 통곡하던 제페토는 아들이 남긴 솔방울(‘피노키오’의 의미)을 무덤 곁에 심었고, 거기에서 싹이 나고 자란 소나무를 베어 아들을 대신할 목각인형을 만든다. 이름하여 ‘피노키오’다. 그러니까 피노키오는 제페토의 아들 카를로의 대용품(대체제)으로 탄생한 셈이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대용품이 된다는 설정에는 필연적으로 그 대용품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다. 비록 나무 인형이긴 하지만 피노키오는 누구인가? 제페토의 아들 카를로인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새로운 인격체인가? 이 문제는 1960년대 우리에게 로봇 애니메이션의 환상을 심어줬던 데즈카 오사무의 〈우주 소년 아톰〉에도 발견된다. 이어 1990년대 키시로 유키토의 〈총몽〉으로 발전하고, 영화로 제작된 〈알리타〉는 그 세련된 버전이다. 각 작품에서 전환점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각의 순간에서 시작된다. 비록 나무 인형이고 로봇이지만, 그 존재 자체와 개별 인격체로 인정받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기엔 그들을 제작했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제페토, 텐마 박사, 이도 다이스케)의 과거 자식을 잃은 기억으로부터의 치유와 회복이 필수적이다. 즉 기억 속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아들(son)’에서 ‘아이(child)’로 전환하여 부르는 시점이다.

영화에서 제기된 이슈는 이 외에도 다양하다. 전체주의 시대가 배경이기에, 획일화된 사회제도로 순응/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세력과 자유와 개성, 창의성을 갈망하는 새 세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여기엔 자신의 이권을 위해 다른 걸 희생시키려는 기성세대의 탐욕스러운 죄악이 바탕 되어 있다. 대표적 인물이 ‘포데스타 시장’이나 ‘볼페 백작’이다. 욕망과 기득권에 집착한 어른들의 사회에서 피노키오와 같은 아이들은 언제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끝까지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행동에는 하늘의 도움이 따른다. ‘푸른 요정’이나 친절한 멘토 귀뚜라미 ‘세바스티안’의 역할이 그것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영화 속 피노키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오르게 한다. 자주 등장하는 십자가 조각상과 바닷속에 빠져 커다란 바다 괴물의 배속에 들어간 이야기(요나), 피노키오를 인기와 돈으로 유혹하는 장면, 자신의 영생을 희생하면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사건 등은 성경에서 따온 모티프다. 여기에 인간 소외와 도구화, 불법 아동 매매와 노동, 경쟁과 공생, 교육과 학교 문제, 가족의 역할과 의미, 진정한 행복의 조건, 세대 간 소통/불통 문제, 완전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망과 이로 인한 부작용, 그리고 진실의 힘과 거짓의 교활함의 대비는 영화를 통해 발견하는 소소한 주제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각자 삶의 위치와 상황에서 다양한 해석학적 자유공간이 존재한다. 기괴한 구성과 영상미가 뿜어내는 재미와 아울러 메시지에서 발견되는 의미의 풍성함은 이 애니메이션이 왜 수작이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임명진 목사<br>북악하늘교회 담임<br>문화사역 전문기자<br>
임명진 목사
북악하늘교회 담임
문화사역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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