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킨츠쿠로이의 영성
[전문가 칼럼] 킨츠쿠로이의 영성
  • 이민재 목사
  • 승인 2024.04.16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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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저음 가수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은 절창 〈생의 송가Anthem〉에서 고통의 이유를 이렇게 노래한다.

새들은 말하는 것 같았어 

지나간 일을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후회와 걱정은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는 좀이다. 현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용한 유일한 시간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상 모든 생명체 중 유독 인간만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후회와 걱정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동안 불행은 삶의 시간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3연으로 된 〈송가〉의 후렴구는 울림이 크다.

종을 울려야 해,

아직 울릴 수 있을 때에

흠 없는 완벽한 제물일랑 잊어버려.

종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다. 과거의 종소리는 사라져 안 들리고, 미래의 종소리는 아직 울리지 않아 들을 수 없다.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아니 종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만 현재에 머물 수 있다. 종소리는 우리를 현재로 초대하는 신성의 소리다. 해서 종을 울려야 하고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선 이미 신성의 그 소리가 울리고 있다. 그 내면의 종소리를 경청할 때 우리는 후회의 잔향이 남아있는 삶을 긍정하고,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을 환대할 수 있다.

조건이 있다. “흠 없는 완벽한 제물일랑 잊어버려”야 한다. 흠 없는 완벽한 제물은 신 앞에 선 인간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종교적 예의다. 하지만 태도보다 제물 자체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때 제사는 가장 비종교적인 일이 되고 만다. 완벽한 제물에 대한 강박이 율법, 교리, 윤리, 도덕, 규범, 당위, 책임, 의무, 성적, 실적, 업적, 희생, 헌신의 형태로 요구될 때 삶은 병 든다.

〈송가〉의 백미는 후렴구의 마지막 두 행이다. 복음이 바리사이적 율법의 감옥에서 숨 막혀 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선언하듯, 이 노래는 흠 없는 완벽한 제물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위로와 해방의 메시지를 전한다.

금이 가지 않은 건 없어, 모든 것엔 금이 있어.

하지만 햇빛은 금을 통해 들어오지.

세월은 완전해 보이던 것에 금이 가게 한다. 멋진 도자기에도, 우아한 꽃병에도 금이 간다. 금 간 것은 무가치하다, 고 우린 생각한다. 불완전하니까. 진정 그럴까. 동물적 본능으로 험악한 세월을 버틴 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얼굴엔 주름이라는 금이 가 있다. 식솔들을 먹여 살리느라 중노동에 시달린 아버지들의 딱딱한 손과 발바닥엔 삶의 무게라는 금이 가 있다. 상사의 갑질을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직장인들의 가슴엔 상한 자존심이라는 금이 가 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겐 날벼락이라는 금이 가 있다. 이런 금들이 무가치할까.

킨츠쿠로이(金繕い)라는 공예기법이 있다. 깨져서 쓸모없어진 도자기 조각들을 접착제로 복원하는 일본의 전통공예기술이다. 깨진 그릇을 고쳐 쓸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의 생존 기술이었다. 그런데 접착제에 금을 섞어 조각들을 붙이면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킨츠쿠로이 기법은 깨진 자국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릇의 상처를 예술적 무늬로 승화시킨다. 실패와 희생이 남긴 생의 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아프고 슬퍼도 은총은 그것들을 빛나는 삶의 무늬로 재창조한다. 햇빛은 금을 통해 들어오는 법이다.

은총은 홀로 일하지 않는다. 갈라진 틈으로 햇빛이 들어오듯 은총은 흠을 통해 들어온다. 사실 금도 흠도 없는 사람, 실패도 상처도 없는 사람에겐 은총이 필요 없다. 은총은 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며, 놀랍게도 언제나 흠을 통해 죄를 통해 들어온다. 킨츠쿠로이의 영성이라고나 할까, 불완전함의 영성이라고나 할까? 기막힌 역설이지만 그게 신앙의 신비다. 완전이 불완전을 통해 틈입하는 신비! 이러한 역설의 신비를 깨달았을 때 바울은 선언했을 것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롬 5:20)

이민재 목사<br>은명교회 담임<br>감신대 객원교수<br>
이민재 목사
은명교회 담임
감신대 객원교수
예목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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