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전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2024년 3월 31일 한교총 부활절 연합예배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총선을 불과 열흘을 앞두고 이 부활절 연합예배에 현직대통령이 참석하여 10분 이상을 축하의 말을 한 것이다. 대통령이 친히 걸음하여 기독교 최대의 축제에서 축사를 한 것이 뭐가 문제인가? 평상시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평상시에 대통령이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라 할 수 있는 부활절에 친히 왕림해서 축하의 말을 해준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큰 기쁨이요 감사할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부활절의 대통령 축사는 그 시기가 너무나 예민했다. 불과 10일 후인 4월 10일에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대통령이 국정을 시작한 지 정확히 2년이 지난 시기여서 대통령의 국가통치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농후한 선거였다. 당연히, 여당과 용산 대통령실은 여당이 다수당이 되어, 대통령이 긍정적 평가를 얻고 집권 중후반기의 국정운영에 탄력을 얻기를 원하고,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와 대통령의 여러 실정과 친인척 비리를 심판해야 한다고 서슬 퍼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때였다.
대통령의 언행 하나하나가 절대로 가치중립적이거나 정파 중립적이지 않고, 편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국민 모두는 그 언행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호와 불호를 표명하는 때였다. 그 민감한 시기에 한국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교총이 보란듯이 대통령을 기독교 최대의 축제에 초대하여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이미 총선행보의 연장선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일상적인 축하의 말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견고히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보수정치의 상징적 인물인 이승만 대통령이 유언으로 남겼다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읽음으로 축하의 변을 마무리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말라.”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확고한 수호자로 이해되고, 보수정치와 기독교가 동일시되는 순간이었다. 워낙 민감한 시기였기에, 이를 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마도, 한국 기독교와 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보수 세력간에 정치적, 정서적 연대가 대단히 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슨 뜻인가? 정권심판의 성격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한국기독교의 교단대표단체가 특정 정파세력을 손들어 주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는 말이다. 그 자리에는 당시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의 한 사람인 김부겸 전총리도 배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 어디에서도 한교총이 그에게 균등하게 말할 기회를 주거나, 축사나 인사말을 할 수 있게 배려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그 민감한 시기에 의도적이었다면 한교총이 명료하게 한쪽 정파의 편을 들어준 것이요, 의도성이 전혀 없었다면 선교적 정무감각이 이리도 빈약한 것인가 통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정확히 10일 뒤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이 중간평가 성격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하는 초유의 결과가 일어났다. 국민이 현재의 대통령의 통치에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그 민심은 아마도 한국기독교를 집권여당과 특정 종교가 정서적, 이념적 공감대를 이루어 연대함으로, 결국 정교분리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고, 복음의 순수성을 자기부정한 종교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이렇게 해서 또다시 민심에서 신뢰도를 하락시키게 된 것이다. 2022년 국민일보가 진행한 ‘한국 기독교인 의식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 교인들이 보는 중요한 개혁과 갱신의 과제는 ‘교회의 탈정치화’라고 언급했다. 한국교회가 특정 정치이념과 정치집단과 선택적 친화력을 갖고 있는 것이 선교의 가장 결정적 장애라고 본다는 뜻이다. 한국교회의 사활이 걸렸다고 보는 3040세대는 교회의 ‘정치화’에 더욱 민감하다.
이런 면에서, 2024년 부활절 연합예배는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가중시켜 선교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선교가 막힌다! 선교가 되지 않는다!”고들 아우성친다. 맞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한국교회의 선교를 가로막고 후퇴시키고 있는가? 사실 선교를 후퇴시키는 사람들은 힘없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이 아니다. 분별력 없고 야심으로만 가득 차 있는 교회지도자들과 교회정치세력들이한국교회의 선교를 막는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특정 정치이념과 어설프게 동일시하여, 결과적으로 교회를 특정정치집단의 연대세력으로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하는 이들 때문이다.
이제는 그만둘 때이다. 진정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이로 인해 상처받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런 정치화를 내려놓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