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리고 여성
가족 그리고 여성
  • 김경희 박사
  • 승인 2024.06.1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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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김경희 박사
'돕는 배필로써의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혹은 열등감을 내포하는 단어가 아니다.
'돕는 배필로써의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혹은 열등감을 내포하는 단어가 아니다.

김경희 박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목회상담 박사(Ph.D)학위를 받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심리상담학 객원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생활상담실 객원 상담사,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다솜심리상담센터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_편집자 주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현대 사회 속에서 여성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을 하도록 돕는다. 필자는 기독교인 여성, 그리고 아내이자 어머니로써 살아가는 다수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다. 필자가 만난 다수의 여성들 중에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기독교인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족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 관계에서의 갈등, 기독교 가치관과 부딪히는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여성들도 있다. 실제로 기독교여성상담소에는 관련된 어려움과 갈등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상담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가족과 여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며,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관계적, 신앙적 어려움을 돌볼 수 있는 목회적 돌봄의 토대가 필요하다고 보기에 본 글을 쓰는 바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동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돌봄과 희생의 역할을 요구해왔다. 여성의 희생과 돌봄을 강조한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에 의해 제시되었던 열녀(烈女)라고 하는 여성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열녀(烈女)라는 단어는 전한(前漢) 말인 BC 32-7년경에 유학자였던 유향이 쓴 열녀전(列女傳)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향에 의해 사용된 열녀(列女)는 모범이 될 만한 어머니의 이야기, 정숙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이야기, 신의와 의리를 지킨 여성의 이야기, 언변과 식견이 탁월한 여성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모습들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조선으로 들어와 변형된 열녀(烈女)는 아버지, 남편을 따라 혹은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과 희생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의미하였다. 이를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 어머니는 가족 내의 남성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용어가 유입되면서 가족 내의 여성에게는 남편과 자녀를 위한 돌봄과 희생을 하는 어머니상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여성이 자기실현의 기회를 포기하고 남편과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는 모양은 오늘날에도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초기에 제시한 여성상은 가족을 지키며 경건, 순결, 순종의 미덕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 11:9)”,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등의 성서를 토대로 하여 여성에게 침묵이라는 역할이 할당되었다. 또한 기독교적 신앙에서 여성은 가족 안에 머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고, 여성에게는 가족의 구원을 위한 희생이 강조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은 교회 내에서 잠잠해야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봄과 관련한 봉사만을 해야 했다. 심지어 이러한 관점은 여성이 목회자로써 안수를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까지 이어져서 현재에도 소수의 기독교 교단에서만 여성 목회자 안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여성 목회자는 여전히 가부장적 토대를 지닌 한국 교회 안에서 소수의 목소리로 무시되거나 여성 목회자에 대한 차별적 고정관념 속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양상은 여성주의 가족치료사인 레이첼 T. 하레-무스틴((Rachel T. Hare-Mustin)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젠더(Gender)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돌봄의 역할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욱 강조하여 요구되었다. 젠더는 단순히 생물학적 성적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젠더는 사회적 구성물로써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토대로 하여 구조화된다. 즉,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관계적인 존재라고 인식되면서 돌봄의 당위성이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이는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양육을 위해 경력단절여성이 되게 하거나,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면서 자녀 양육에 충분히 전념하지 못함에 대한 죄책감과 부담감으로까지 이어졌다. 둘째,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해 여성은 남성의 폭력의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인 폭력의 대상으로 남겨지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이는 가족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그로 인한 심리적 아픔에 대한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2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연구에 의하면, 평생 현재의 배우자/파트너에 의해 신체폭력과 성폭력의 피해를 입는 여성은 9.5%, 남성은 4.8%로 나타났다.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상대방에게 적대감, 분노를 느끼는 정도는 여성이 17.3%, 남성이 8.0%로 나타났으며, 남성에 비해서 여성이 무력감을 경험하고 자존감이 하락하며, 우울과 불안, 위협감과 공포심 등을 경험하는 양상이 높게 나타났다.

여성의 희생과 전적인 돌봄의 역할은 안정적인 가족 환경을 만들고 건강한 자녀의 성장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안정적인 가족 환경과 자녀의 건강한 성장에는 여성, 즉 어머니의 전적인 희생과 돌봄만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어머니의 전적인 희생과 돌봄은 목회신학자인 바니 J. 밀러-맥리모어(Bonnie J. Miller-Mclemore)가 말하는 ‘완벽한 어머니 환상(Fantasy of Perfect Mother)’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가 없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사랑과 희생을 하는 어머니 사랑의 끝에는 정서적 탈진과 자녀에게 정서적 충족의 대가를 바라지만 충족되지 않음으로 인한 무기력감, 우울, 소외감 등이 기다리고 있다. 여성, 남성, 그리고 자녀가 함께 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건강은 여성의 전적인 희생과 돌봄에서 오지 않는다. 가족 공동체의 건강은 모든 구성원의 자기애와 자기 돌봄을 기반으로 하여 유지, 혹은 향상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가족에 대한 신학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첫째, 여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전한 인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거나 남성의 지배나 관리 하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여성주의 성서학자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성적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여 남성을 먼저 창조하고 그 다음으로 여성을 창조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남성을 대표하는 인간(Man)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인간성(Humanity)을 창조하신 것이고, 두 가지 성의 특성을 창조하신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성서에서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라는 구절 중에 ‘돕는 배필’의 원어는 에제르 크네그도(Ezer K’negdo)인데, 에제르는 다른 성경 맥락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며, 크네그도는 ‘같다’ 또는 ‘보다 더 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임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돕는 배필로써의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고 열등감을 내포하는 단어가 아닌 것이다.

둘째, 돌봄과 양육은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인 것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밀러-맥리모어는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있는 하나님의 신성을 바라볼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일상에서 영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동시에 영성적인 일상을 사는 데에는 영적인 잠재력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남성과 여성 즉 배우자 간의 상호 돌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가족 밖의 공동체적 네트워크 즉,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충분히 좋은 네트워크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지닌 돌봄의 짐을 공유함으로써 여성은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돌봄과 양육은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남성과 함께 할 영역이며 더 나아가서 공동체적인 사명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 기독교인 여성이자 어머니인 여성에게 주어진 돌봄과 희생, 그리고 양육의 부담감은 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돌봄과 희생은 남성과 여성이 상호적으로 돌보고 서로가 지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함께 해나가야 할 사명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적 특성을 한 가족 공동체의 부부가 형성한다면, 그 가족의 자녀 역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존재적 가치를 충분히 경험하고, 상호적인 돌봄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할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건강한 가족의 이상을 다시금 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경희 박사
김경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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