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 받지 못한 담임목회자
안수 받지 못한 담임목회자
  • 이혜정 교수
  • 승인 2024.07.04 1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혜옥 전도사편

발제_이혜정 교수(영남신학대학교)
중견교회로 성장했지만 교단법에 따라 손혜옥 전도사는 목사가 될 수 없었다. 송별예배는 성도들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중견교회로 성장했지만 교단법에 따라 손혜옥 전도사는 목사가 될 수 없었다. 송별예배는 성도들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 이 글은 예장통합총회 여성안수허락 30주년기념 여성대회에서 이혜정 교수가 발제한 내용에서 발췌한 것이다. 지면 한계로 각주는 일괄 삭제했다._편집부


1. 열아홉 과부가 신학교에 입학하다

손혜옥(1937-1988)은 1937년 충남 영동 출생으로 16살 되던 해인 1953년에 경주시 안강읍 권씨 가문에 시집을 갔다. 일 년 만에 아들이 태어났으나 다음 해 에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19세 나이에 경주성서학원에 입학하였다. 1950년대 전후 시기에 남편을 잃고 자녀를 키우는 젊은 홀어머니는 평범한 하나의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손혜옥이 신학교에 입학하자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삶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젊은 과부가 조신하지 못하다, 새서방 찾으러 학교에 간다”고 수군거렸다. 그런 소문을 뒤로 하고 손혜옥은 신학교에서 성실히 공부하였고 1959년 3월에 경주성경고등학교의 7회 졸업생이 되었다.

손혜옥은 신학교 졸업 후 21세에 첫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였다. 1960년 8월 4일 호명교회에 부임하여 군목으로 은퇴한 김형식 목사를 도와 심방사역, 청소년 목회를 담당하였다. 이 무렵 손혜옥은 결핵에 걸렸다. 당시 흔한 질병이었던 결핵은 과로와 영양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혜옥 전도사는 열정적으로 사역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1963년에 호명교회의 3년 사역을 마치고 손혜옥은 구룡포읍교회로 부임하였다. 호명교회 사역이 좋은 평가를 얻어 더 큰 교회로 부임해 갔는데 그의 건강이 악화 되었다. 바닷가 환경이 결핵을 더욱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가 3개월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에 손혜옥과 아들 모자는 시댁이 있는 안강으로 돌아왔다.

2. 개척사역 20년: 노당기도소, 단구교회

손혜옥은 안강에 와서도 사역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가 두각을 드러낸 것은 주일학교 사역이었다. 당시 교회가 없던 안강 노당마을에서 그는 마을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성경에 대해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훗날 목회자와 신앙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곳이 바로 육통교회의 노당기도소다. 노당기도소에는 수요일과 주일 밤이면 50명에서 60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손혜옥 전도사는 성경, 찬송, 기도를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매우 엄격하고 단호해서 성경 암송을 못하면 혼을 내기도 하고 벌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한없이 인자한 어머니처럼 아이들의 아픔과 고민을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74년 4월 14일, 경동노회 안강시찰회는 단구와 다산지역에 교회개척을 결정하고 손혜옥 전도사를 임명하였다. 단구기도소의 첫 예배는 한 성도의 사랑방에서 열렸고 창립예배는 1975년 6월 1일이었다. 당시 37세인 손혜옥 전도사의 사역을 방해하는 마을의 불신청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신앙인으로 변화되어 훗날 단구교회의 장로들이 되었다.

단구기도소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창립예배와 동시에 교회건축이 시작되었다. 두 평 초가집 예배당에서 시작한 기도소는 확장되어 누에 창고를 손질하여 확장하였다. 일 년 만에 장년 출석교인이 65명이 이르자 대지를 매입하고 예배당을 개축하여 1976년 3월 38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단구기도소가 성장하자 경동노회는 1976년 3월에 손혜옥 전도사를 초대 교역자로 파송 승인하였다. 일 년 후 더욱 부흥한 단구기도소는 1977년 20평 예배당을 구입하고 교역자사택을 건축하여 손혜옥 모자가 입택했다. 그리고 1977년 9월 6일 단구기도소는 단구교회로 정식 승인되었다. 권용근 목사(영남신학대학교 총장 역임)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손혜옥)가 말씀하셨어요.

얘야, 교회 예배공간이 없어 새로 마련하려고 우리 집을 팔았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기가 막혀 어머니께 물었어요.

어머니 우리 형편에 그걸 팔면 어떡합니까? 저는 앞으로 대학도 가야 하는데.

그러자 어머니는 저를 꾸짖으셨죠.

네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하나님이 시키셨지. 어디 네가 했느냐. 너 앞으로 대학도 가고 유학도 갈 터이니 기도해 보자.

당시에는 교회를 위해 집을 판 어머니가 야속했지만 훗날 어머니 말씀대로 저는 대학도 가고 유학도 갈 수 있었습니다.”

3. 개척한 교회를 물러난 여전도사들

교회가 중견교회로 성장하자 목사가 필요했다. 당시 교단법에 따라 여자인 손혜옥 전도사는 목사가 될 수 없었다. 그동안 단구교회 당회는 노회 목사들이 순회하였고 손혜옥 전도사는 방청인으로만 참석했다. 이제 단구교회에 정식 목사가 필요 한 때가 왔고 손혜옥 전도사는 새로운 목사 부임과 함께 물러났다. 1985년 3월 24일 단구교회의 세 번째 성전건축을 축하하는 성전봉헌예배가 열리고 두 달 뒤인 5월 14일에 손혜옥 전도사의 송별예배가 열렸다.

손혜옥은 자신이 개척하고 성장시킨 교회를 물러나야 했다. 여전도사는 개척은 할 수 있지만 성장한 중견교회의 목사는 되지 못했다. 성도들의 눈물바다가 된 송별예배에서 전국여전도회연합회는 손혜옥 전도사에게 기념패를 전달하였다. 노회 차원의 기념패 또는 시상은 없었다.

손혜옥 전도사는 아들이 있는 대구로 와서 달구벌교회의 전도사로 사역하였다. 그리고 1988년 1월 30일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였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그의 아들 권용근 목사(영남신학대학교 총장 역임)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머니는 단구교회를 물러난 3년 후 겨울 아침, 갑자기 쓰러지셔서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저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마지막을 짐작하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 어머니 일기장을 보니 마지막을 예감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물러나지 않고 계속 사역을 하셨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손혜옥 전도사의 생애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여교역자의 전형적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순옥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에 여교역자연합회의 회원 400여 명 중 기혼자가 단 두 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미혼이거나 과부였다. 아마도 전후 시대의 영향이었을 것이고 이들은 평생 전도사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여전도사는 자신이 개척을 했어도 교회 목사는 될 수 없었다. 비록 10년 동안 개척을 하고 성장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처럼 여전도사들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가 성장하면 물러났고 끝까지 전도사로 머물러야했다.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503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