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하나님의 신원하심에 참여하는 교회
[전문가 칼럼] 하나님의 신원하심에 참여하는 교회
  • 이상목 교수
  • 승인 2024.07.0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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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하시는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의 중요 신학 주제이다. 신원은 보복, 앙갚음 또는 처벌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부당하고 불의한 일을 당한 자들을 위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며 그릇된 일을 바로잡으신다는 고백을 의미한다. 성서는 거듭하여 약자들의 편에 서신 하나님을 증거한다.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보호하고 신원하시는 하나님은 약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겪는 어그러진 일을 바르게 하시는 분이다. 신자들이 말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약자가 겪는 불의와 부당함을 참지 않고 정의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에 대한 고백이다.

구약의 여러 문헌은 신원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가령, 신명기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신 10:18)”는 분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 이러한 신학은 욥을 향한 친구들의 충고와 욥의 자기 변론에서도 발견된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이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않아 그 대가로 고난을 겪는다고 충고한다(욥 22:9 참고). 욥은 친구들의 의견을 강하게 부정하며 자기가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고 “과부를 인도하였”으며(욥 31:8),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 문을 열어 주었(욥 31:32)”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욥의 항변이다.

상술한 구약의 하나님 이해는 신약으로 이어진다. 야고보서에 따르면,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다(약 1:27). 야고보서는 참된 경건과 대치되는 거짓 경건의 예도 묘사하는데, 회당에 모일 때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좋은 자리로 인도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은 바닥에 앉으라고 말하며 차별함이 그것이다. 그러한 차별과 불의는 회당 밖에서도 발견된다. 죄인을 찾아가 교제했던 예수는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신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신학적 주제는 묵시문학에서 첨예하게 강조된다. 초기 교회의 핍박당하던 신자들은 하나님의 신원을 묵시적 비전을 통해 그려내었다. 요한계시록의 묵시는 신자들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고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통치를 고백할 힘을 제공하였다. 묵시의 세계관은 신자들의 고난을 악과 선의 충돌로 이해하였고 현재와 미래 그리고 이곳과 저곳의 대립으로 그려내었다. 현재 이곳은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장래에 저곳은 하나님이 통치하실 것이다. 고난을 겪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원은 그들의 믿음이 결국 참되다고 인정받고 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이다.

묵시문학이 그리는 하나님의 신원은 우리와 그들을 명확히 나눈다. 하나님의 신원을 중심으로 신원의 수혜자와 처벌받는 자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초기 교회의 핍박받던 신자들은 자신을 나그네와 같이 여겼고 나그네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신원을 기다렸다. 신자들에게 ‘그들’은 나그네를 압제하는 자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이었다. 자신을 핍박받는 약자요 하나님의 신원을 받을 자로 이해한 신자들은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갔다.

하나님이 신원하실 약자로 자기를 이해한 초기 교회의 신학은 후대 교회의 자기 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후대 교회는 교회가 ‘현재 이곳’에서 세상의 핍박을 받고 있으며,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것이라 고백한다. 곧, 교회는 지속적인 위협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순수한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하였다. 이러한 신학은 마치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미성숙한 자의 생각과 같이 작동한다. 교회를 향한 일반 사회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이나 요구도 교회를 향한 핍박으로 이해하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응징을 확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과연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일까?

앞서 살핀 성경 구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원은 불의한 일을 당한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돌봄과 정의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신원을 고대하는 자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소외된 자들이었다. 계시록의 신자들도 로마제국의 폭압에 고통당하는 약자였다. 하지만, 현대 한국 교회는 계시록의 교회와는 다르다. 후자는 핍박받는 약자였던 반면, 전자는 더 이상 그러한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약자를 돌보고 불의에 맞서야 한다. 교회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불의라고 볼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정의를 배반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하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신원을 믿는다면 자기를 약자라고 여기고 세상을 증오하는 대신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상목 교수<br>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br>신약학<br>
이상목 교수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부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신약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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