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시작과 함께 가을이 왔다. 아침과 저녁에 부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예전부터 가을이 되면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다. 그 시는 바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시구로 시작하는 ‘가을의 기도’는 절대고독의 시인이라는 김현승 시인의 삶과 밀접하게 맞물린다. 그의 시처럼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다. 기도를 통해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내다보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감사하게도 이번 기도의 계절에 우리의 기도에 보약이 될만한 책이 하나 출판되었다. 그 책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지난 8월에 펴낸 데이비드 테일러의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라는 책이다. 데이비드 테일러는 미국의 신학자, 작가, 목회자로서 현재 풀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및 신학과 문화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삶을 인도하는 시편’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는 국내에 소개되는 그의 첫 작품이다. 이 책은 시종일관 구약성경의 시편에 집중한다. 과거에 데이비드 테일러는 시편을 통해 인생이 변화된 경험이 있었다. 그 귀한 변화의 경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그는 이 책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피터슨이 특유의 차분하고 쉰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데이비드, 내일 시편 1편을 읽게. 다음 날은 2편, 그다음 날은 3편을 읽게. 끝까지 다 읽거든, 다시 시작하게. 고맙네. 그럼 잘 가게.” 그게 다였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했다. 이튿날 아침에 시편 1편을 읽고 그다음 날 아침에 2편을 읽었다. 그렇게 계속 하루에 한 편씩 읽기를 몇 년 동안 습관처럼 지속했다. 그러자 머잖아 기독교 신앙을 보는 내 관점이 서서히 바뀌었다. 자아, 하나님, 기도, 예배, 성경, 충실한 삶 등에 대한 내 인식이 점차 시편의 언어로 푹 적셔졌다.” (25쪽)
신학을 처음 공부하는 데이비드 테일러에게 시편 읽기를 권하는 피터슨은 이미 우리에게 유명한 『메시지』의 저자 유진 피터슨이다. 데이비드 테일러에게 유진 피터슨은 시편의 풍요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한 신학 스승이었다.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는 저자가 날마다 시편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시편과 함께 살았던 자전적인 내용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저자는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에서 시편과 관련된 키워드를 14가지나 소개한다. ‘솔직함’에서 시작하여 ‘창조세계’로 마무리되는 14가지의 키워드는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시편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만약에 독자가 이 책을 창조적으로 읽고자 한다면 저자가 언급한 14가지의 키워드 말고 자신만의 키워드로 시편을 재해석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처럼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를 알려주는 ‘기도의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의 학교’에 입학해 시편을 읊조리며 삶을 재형성한다. 나는 『마음을 열고, 두려움 없이』를 읽자마자, 서점에 연락해 대한성서공회에서 출판한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구매했다. 기존에 익숙한 번역본이 아니라 새로운 번역본으로 시편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았지만 날마다 새로운 번역본으로 시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뎌진 기도의 언어가 부활하는 느낌이다. 가을에는 시편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