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입대를 앞둔 청년과 상담을 했다. 청년은 군대 가기가 두렵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군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다가 관심병사에 관련된 정보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내용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청년인 점을 발견하고 군에 가지가 두려워졌다는 것이다. 상담 결과 청년이 중학교 시절과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뭔가 부족해 보였는지 친구들이 자신을 미워했고, 그 이후로 자신감도 없어지고 군대 가기도 두려워질 정도라는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필자는 부모님과 상의하여 청년에게 ‘역량 강화비전코칭’ 프로그램을 10회 해주기로 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모가 자녀의 학업 및 인성에 1차 적인 책임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청년이 왕따를 당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부모님 잔소리하고 많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자녀는 존재감을 상실하여 불안감에 시험 망치게 되고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됨으로써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과연 자녀 교육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미국 부모와 한국 부모 차이를 보면 미국은 아빠가 자녀 교육에 참여하는 반면, 한국은 엄마에게 교육을 전적으로 위임한다. 이에 엄마는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언론사에서 초등학생 학부모 200명을 대상으로 ‘자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의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3위는 ‘집안일을 잘 도왔으면 좋겠다’ 2위는 ‘정리 정돈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였다. 1위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공부를 지금보다 더 책임감 있게 했으면 좋겠다’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참 씁쓸한 결과다. 대한민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자녀가 커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업을 가져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사회적 현상의 결과라고 보인다. ‘혼자 넘어진 아이는 울지 않는다.’ 아이가 걸음마 배울 때 넘어져도 엄마는 기뻐서 손뼉을 친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다. 아이는 세상을 스스로 서려고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경험을 이겨낸다. 만약 부모가 쪼르르 달려가서 일으켜 준다면 스스로 일어나는 경험은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식의 강요는 금물
부모의 “이것 해라, 저것 해라”라는 식의 강요나 간섭은 금물이다. 부모로서 자녀의 자존심을 키워 주어야 한다. 공부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뇌세포와 모든 신체조직 간 고도로 긴밀한 상호작용이다. 공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억능력’이고 ‘추리 능력’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집중력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자족감을 꺾는 행위는 자녀에게 공부하지 말라는 말이나 같은 것이다. 부모 역할은 그들에게 잔소리보다 격려의 말, 칭찬의 말, 간식을 준비해 건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미래 계획을 스스로 짜도록 지도해야..
상위권 학생들은 공부할 때 우선 공부할 과목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짠다. 막연히 “일요일에는 수학을 다 해버릴 거야”라는 식의 계획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러한 계획은 금방 지루해지게 되고, 목표가 뚜렷지 않기에 힘들 수밖에 없다. 계획을 짜서 당장의 성적 결과보다는 학습 과정을 중시하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고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고 신명기 6장 6절로 7절에도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 주인공 되도록 마음껏 응원하고 기도해주면 된다. 아이가 넘어져도 기뻐서 마음껏 손뼉 쳐 주는 부모, 미래 계획을 자녀가 스스로 짜도록 지도하는 것은 부모가 꼭 가져야 할 바람직한 양육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