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슬로건이 ‘정의사회구현’이었다. 가장 정의롭지 못한, 아니 누구보다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은 자신들의 불법과 불의를 가리기 위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정의구현’이라는 미명으로 잡아들여 비인격적으로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삼청교육대는 그 ‘정의사회구현’이 얼마나 가식적인 슬로건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명사였다. 현재도 예외는 아니다. 주체만 바뀌었을 뿐이다.
‘정의로운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겠다고 외치는 자들 대부분이 실상은 가장 정의롭지 못한 부류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정의는 어느새 정의롭지 못한 자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폭력을 합법적으로 집행하는 근거와 명분으로 변질되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며, 진짜 정의 구현은 원하지 않고 이용만 하는 기득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2〉는 ‘정의’에 관한 영화다. 2015년 개봉한 전작 〈베테랑〉이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재벌 2세 조태오를 정점으로 한 대기업의 경제적 불법과 그 가족들의 패륜적 행위를 처단하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범위가 사회적인 이슈로 확대되었다. 빌런으로 ‘해치’가 등장하는데, 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동양의 신화적 동물에서 차용한 명칭이다. 정의가 상실된 불의한 세상에서 ‘해치’라 명명된 인물이 나타나 통쾌하게 복수한다는 설정이다. 사적제재(私的制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론몰이, 사이버 렉카, 인터넷 가짜뉴스, 억울한 피해자 등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공권력의 끝자락에 서 있는 서도철을 비롯한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은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치’와 같은 특별한 존재의 사적제재를 소재로 삼은 작품은 여럿 있다. 2000년대 초반, 오바 츠구미가 스토리를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그린 일본의 〈데스노트〉 시리즈는 이를 활용한 대표적 작품이다. 법학을 공부한 천재 소년이 ‘데스노트’를 이용해 사회악을 뿌리 뽑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설정은 신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추리 기법의 전개와 맞물려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비롯한 〈비질란테〉 〈모범택시〉 〈살인자ㅇ난감〉 등이 사적제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정의구현’을 명분으로 한 사적제재는 과연 정당할까? 영화 〈베테랑2〉에 드러난 류승완 감독의 시각은 분명하다. 첫 부분엔 다소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결국 “좋은 살인이 있고 나쁜 살인이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사적제재의 한계를 명확히 한다. 전지적 관객의 시점에선 나쁜 놈을 시원하게 처단하고 죽이면 후련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누가 진짜 악인이고 선인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 악이라 할지라도, 그 악을 사적으로 징벌할 자격을 갖춘 자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공적으로 위임된 권력이 아닌 이상,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제압하는 건 악의 반복과 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특히 ‘살인’이라는 처벌 방식은 한 생명의 존엄성과 유일성의 가치 앞에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더불어,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더디고 느릴 수 있는 법의 활용과 속 시원하고 빠른 여론재판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며 정확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사이버 렉카나 인터넷에 떠도는 가짜뉴스는 죄 없는 사람을 마녀사냥식 범죄자로 낙인찍어 피해를 줄 수 있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영화에서 카메라가 스치듯 잡은 책이 한 권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불의와 불공정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 지금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민 각자가 갖는 건강하고 올바른 정의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다. 먼저, 어떤 특별한 영웅이 나타나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 주기 바라는 무책임하고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대신, 스스로 무엇이 정의이고 우리 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며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정의 사회는 누가 대신 실현해 주지 않는다. 내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치 가장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야 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