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개봉한 영화 <크리에이터>는 제목만으로는 기독교 영화를 방불케 한다. 원제가 <The Creator>로 정관사와 대문자로 제목을 표기한 데서도 종교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의 전쟁이 시작되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 영화의 배경이다. 전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만삭의 상태에서 실종된 아내 마야(젬마 찬)의 행방을 찾기 위해 AI 로봇과 동행한다. 이후의 영화의 구체적 내용은 생략하고 대사 하나를 소개한다.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입니다(This is a fight for our very existence).”
대사의 번역이 크게 문제없어 보이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어 대사의 우리(our)가 ‘인류’를 뜻하지 않고, 존망(存亡)으로 번역한 ‘very existence’에 멸망(滅亡)에 해당하는 ‘망’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로 번역한 우리는, 인간 중에서 AI에 우호적인 진영에 맞선 AI를 적대하는 진영을 의미한다. 이들의 싸움은 존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질에 관한 것이다. 존망은 AI와 관련한다. 싸움에 지면 멸망하는 쪽은 AI 진영이다.
만일 AI에게 설교를 시킨다면 어떨까. 이런 궁금증이 검토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4차 서울 로잔대회의 주요 주제로도 다루어졌다. 아직 깊이 사귀지는 못했지만 챗GPT와 대화한 짧은 경험에 바탕해서 내 의견을 말하자면, 내용상으로는 목사 90%보다 설교를 더 잘할 것 같다.
방향성은 차치하고, 구성, 어휘, 어법, 효과 등에서 흠결 없는 설교가 가능한 목사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가치관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국어 실력 관점에서 비문과 틀린 단어를 마구잡이로 틀린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쓰는 목사가 부지기수다. 설교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어떤 목사는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떠도는 잘나가는 목사의 설교를 표절하기도 한다. 대놓고 특정 목사를 베끼다가 교인들에게 적발당한 목사도 있었다.
국어실력이 모자라는 게 영성의 증거는 아니다. 물론 국어를 못해도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목사 양성 시스템에서는 구조상 기본적인 국어에 실패한 목사가 배출돼서는 안 된다. 현실은 반대로 ‘양산’이다.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조슈아 역을 맡은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공감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인간보다 AI가 더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잘 인도하기만 한다면 챗GPT가 생각보다 이용자나 글의 대상에 잘 공감한다. 아직 이용자의 능력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현재의 발전 속도를 볼 때 머지않은 미래에 AI는 목사를 글솜씨나 공감 측면에서 압도할 것이 확실시된다. 그땐 한 1% 정도의 목사만 AI에 맞서 경쟁력을 갖지 싶다.
관건은 영성이다. 글솜씨나 공감 측면에서 AI에 밀리지만 영성이 충만하다면 목사는 설 자리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영성 때문에 목사는 AI에 더 밀릴 공산이 크다. 요즘 목사의 영성으로는 조만간 AI의 영성에도 한참 못 미칠 것 같다.
극중에서 조슈아는 처음에 AI에 대해 “프로그래밍이지 인간이 아니다”라고 깎아내리지만, 극이 전개되며 AI를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로 대한다. 지금도 설교를 챗GPT에 의존하는 목사가 없으란 법은 없다. 곧 많은 목사가 설교문 작성을 AI에 의존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나마 있던 박약한 영성은 증발하는 시대가 눈앞에 보인다. 한번 AI에 맛 들이면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고, 결국 개신교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를 AI가 전담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렇다면 AI를 금지해야 하는데, 외양상 AI에 밀리는 목사가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어쩔 것인가. 이것은 목사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 될 테니.
아는지 모르지만, 싸움은 벌써 시작됐다.